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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

[조선 6대 왕] 단종 12세 왕 즉위, 황표정사, 계유정난, 어린 상왕

by 작심인프피:) 2024. 4. 15.

안녕하세요. 작심인프피:)입니다.

조선의 6번째 왕인 단종은 짧은 통치 기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가 겪었던 어려움들을 통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12세에 왕에 즉위하여 주변 어른들로부터 황표정사로 정치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리고 숙부인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측근들을 제압하는 '계유정난', 그로 인해 결국 단종은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 어린 상왕이 됩니다. 그럼 지금부터 '비운의 왕' 단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단종 어진

단종

생애: 1441년~1457년

재위기간: 1452년~1455년

휘:이홍위

가족관계:  아버지 문종/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 부인 정순왕후 송씨

 

1. 12세 즉위한 단종

  단종은 조선 최초로 안정적인 왕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원자-세자-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안정적인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이를 암시하는 하나의 일화가 있습니다.
[세종이 손자의 탄생을 기뻐하여 죄수들을 사면하는 교지를 발표합니다. 그런데, 앞에 있던 촛대가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귀한 손자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 기분 나쁘게 촛대가 뚝 떨어지니, 불길한 일이 일어날 징조가 아니었을까요?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단종의 어머니인 세자빈 권씨가 산후병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를 시작으로 단종이 6살이 되는 해에 할머니 소헌왕후가 돌아가시고, 10살이 되던 해에는 세종이 승하합니다. 따라서, 아버지 문종은 3년상을 연이어 두 번 치르게 됩니다. 병약한 문종이 6년 상을 치렀으니 얼마나 몸이 상했을까요. 결국 문종은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병으로 승하하게 됩니다. 
 그렇게 단종은 12세에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주변에 단종을 보호해 줄 이렇다 할 어른은 왕족이 아니었습니다. 임금의 유언을 받든 대신인 고명대신으로 황보인, 김종서가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다고 합니다.

 

2. 황표정사

 나라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것은 인사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관리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그 집단의 성패가 좌우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조선시대에는 특정 세력의 영향을 받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일이 단종 때부터 일어나게 됩니다.

 어린 단종은 아직 정치에는 문외한이었습니다. 따라서 관리를 임용할 때, 주변으로부터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김종서'입니다. 김종서가 추천하는 사람의 명단 위에 노란색 표시를 하여 왕이 사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를 '황표정사'라고 합니다.

 

3. 계유정난

 1453년 10월 10일. 김종서의 집에 자객들이 들이닥칩니다. 수양대군이 안평대군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했다는 명분을 내세워 김종서와 황보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세력을 모두 숙청하게 됩니다. 이 당시 수양대군의 책사였던 한명회에 의해 조정 신료들의 목숨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계유정난'이란 '계유년에 발생한 어지러운 난을 바로잡았다.'라는 뜻입니다. 김종서와 안평대군의 역모를 진압하고 세상을 바로잡았다는 뜻이지요. 역사의 승자인 수양대군에 의해 붙여진 이름일 뿐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난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으로 조선의 핵심 관직들(의정부영사, 이조판서, 병조판서, 내외병마도통사)을 겸직하게 됩니다.

정 1품, 정 2품, 국방부 장관, 군사 통솔직 등 나라를 뒤흔들 수 있는 관직들이었지요. 또한 주변에는 계유정난에 합세했던 이들을 주요 관리직에 올립니다. 이제 단종은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의 그늘 밑에서 위태로운 왕의 자리를 이어가게 됩니다.

 

4. 어린 나이에 상왕이 된, 단종

 단종은 세종이 아끼던 손자이자, 정통 왕위 계승자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세종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에 의해 좌절됩니다. 계유정난이 일어난 해는 1453년,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른 해는 1455년. 여기서 궁금증이 하나 생깁니다. 왜? 수양대군은 권력을 모두 지게 된 계유정난에 곧바로 왕이 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명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2년간 신하로서 단종을 보필(?)하며 반발 세력을 잠재우고 이미 견제 세력인 김종서와 주변인들을 제거 했기에 더욱 맘 편하게 2년간 단종의 아래(?)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실록에 따르면 단종이 할아버지 세종이 계시던 자미당을 바라보며 한탄의 눈물을 흘릴 때, 수양대군과 그의 아내도 함께 울었다고 합니다. 으흠. 악어의 눈물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울던 수양대군에게 단종은 왕위를 양위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재위 기간 3년여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물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단종이 홀로 설 때까지 도와줄 든든한 조력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렇다면 왕의 왜척 세력 및 그 주변의 세력들이 조선을 가만히 두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일은 후에 일어나기도 하지만요. 

 

 지금까지 단종의 생애를 살펴보았습니다. 12살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고 믿을만한 어른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고 홀로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요? 김종서의 황표정사에 의존하는 자신을 보며 얼마나 더 불안했을까요? 지금 생각해 보면 단종이 왕위에 즉위할 당시의 나이에 저는 그저 축구만 좋아하고, 엄마 말 안 듣는 말썽쟁이였는데 말이죠. 다음 게시글에서는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 즉 세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