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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

[조선 5대 왕] 문종의 길었던 세자 기간, 조선의 미남, 측우기 발명

by 작심인프피:) 2024. 2. 15.

안녕하세요. 작심인프피:)입니다. 오늘은 조선의 5번째 왕 문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문종은 세종 아래에서 30년 간의 세자 기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세종실록을 보면 당시 미남으로 소문이 자자했다고 해요. 또한 측우기는 많은 사람들이 장영실이 발명했다고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사실 문종이 발명한 것이라고 하네요. 그럼 지금부터 문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종(출처: 드라마 '대왕세종')

문종

생애: 1414년~1452년

재위기간: 1450년~1452년

휘: 이향

가족관계: 아버지: 세종, 어머니: 소헌왕후 심씨, 부인 : 현덕왕후 김씨, 아들: 단종 

 

1. 문종의 30년간의 세자 기간

이향(문종)은 1414년에 태어나 1421년 7세의 나이에 세자에 책봉됩니다. 그는 세종의 정실부인인 소헌왕후와의 사이에 적장자인 첫째 아들로 태어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 세종을 쏙 닮아 성품이 온화하고 풍채 또한 좋았습니다. 그는 7살의 나이에서부터 무려 '30년' 간 왕세자의 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그만큼 나중에 왕이 되었을 때를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죠. 아버지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당시에는 서무결재권을 맡기도 했지요. 1442년부터 세종이 승하한 1450년까지 대리청정을 맡았다고 합니다. 

 

2. 측우기는 문종의 발명품

측우기는 세종 때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입니다. 우리나라 지역은 비가 일정하게 내리지 않아 농사를 짓기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또한 강우량을 측정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측우기가 발명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측우기는 '장영실'이 발명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종실록]을 살펴보면 측우기는 문종의 작품이라는 것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습니다. 
 측우기는 음력 1441년 4월 29일에 발명되었습니다. 이는 서양 최초의 측우기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선 기록입니다. 훗날,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57년 정부는 5월 19일을 '발명의 날'로 지정합니다. 음력 1441년 4월 29일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19일'이라고 합니다.

 

3. 문종은 조선 최고의 미남(feat. 홀아비)

조선시대 남성의 미적 기준은 풍채가 좋고 수염이 멋진 사람을 미남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아버지 세종을 닮아 몸이 뚱뚱하며 삼국지의 관우의 수염을 닮은 '문종'의 뛰어난 외모는 명나라까지 소문이 자자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미남 문종은 아쉽게도 아내 복이 없었습니다. 첫 번째 아내였던 휘빈 김씨는 잘생긴 문종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이상한 민간요법을 사용하다가 쫓겨났고(세종 챕터에 자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번째 아내였던 순빈 봉씨는 궁녀와 동성애로 바람나 쫓겨났으며, 세 번째 부인 권씨는 단종과 경혜공주를 낳습니다만 단종을 낳고 다음 날에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 이후, 문종은 다른 정실부인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위에 오르고 2년 후 죽게 됩니다.

 

4. 문종의 죽음

 아버지 세종을 닮아 유학과 학문 연구에 몰두한 문종은 결국 병을 얻게 됩니다. 세종 승하 후, 삼년상을 치르면서 문종의 몸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됩니다. 결국 병상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지지요.
 문종에게는 세자 단종이 있습니다. 그런데, 병상에 누워 있는 문종은 오로지 단종 걱정뿐이었습니다. 문종에게는 형제가 많았습니다. 바로 아래 동생인 문무를 겸비한 용맹한 수양대군이 있었습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영화[관상]에도 등장했죠. 그리고 한석봉에 견줄 정도로 예술적 기질이 뛰어난 안평대군은 따르는 이들도 많으며 수양대군만큼이나 야심이 많은 왕자였습니다. 
 이전의 왕자들과 다르게 왕위를 위협할 만한 형제들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세종' 때문입니다. 세종은 형제들과 우애가 깊었습니다. 따라서 자기 자식들도 그러길 바랐죠. 그리하여 형제들을 나랏일에 고루고루 기용하며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방식이 나중에 불행의 씨앗을 싹트게 할 줄은 몰랐겠죠.

 그렇게 세종만큼이나 성군이었던 문종은 홀로 남겨진 아들을 신하들에게 부탁한 뒤, 왕에 오른 지 2년 만에 승하하게 됩니다.

 

문종은 세종의 왕세자로서 30년 동안 열심히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일했던 성군이었습니다. 측우기를 발명하기도 했으며, 명나라에도 소문이 자자할 정도의 미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마냥 행복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인복도 없었다고 하네요. 다음 시간에는 홀로 남겨진 단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