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심인프피:)입니다. 오늘은 조선의 4번째 왕 세종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세종은 여전히 권력을 쥐고 있는 아버지 태종 아래 눈치가 보이지만 백성들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 및 발명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종은 신하에게는 갑질을 했다고 합니다. 또한, 모든 걸 다 갖춘 세종에게는 힘든 가정사가 있었다고 해요. 그럼 지금부터 세종대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종
생애: 1397년~1450년
재위기간: 1418년~1450년
휘:이도
배우자: 소헌왕후 외 후궁 10명
자녀: 18남 4녀
1. 백성의 편, 세종
1) 조선 최초의 여론조사 실시
조선시대에는 한 해 농사로 얻은 수확량의 일부를 나라에 내는 '전세(田稅)'제도가 있었습니다. 매해 곡식의 생산량을 조사하여 그중 10분의 1을 거두었습니다. 하지만 매번 관리를 파견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세금의 미리 세금의 규모를 파악하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세종은 '토지의 등급'에 따라 고정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새로운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 법이 바로 '공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종은 이를 무조건 시행하지 않고 조선 최초로 백성의 의견을 듣는 '여론 조사'를 실시합니다. 1430년 3월 5일부터 8월 10일까지 5개월간 '공법'의 시행 여부에 대한 '여론 조사'를 시행합니다. 조사 결과 찬성이 조금 우위 했습니다. 그만큼 반대하는 백성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종은 이에 법을 보완하여 시행했다고 합니다.
2) 노비에게 출산휴가 100일을 준 세종
조선시대는 신분제 사회로 '노비'가 존재했습니다. 궁에서 일하는 관노비, 개인 노비인 사노비가 있었죠. 이들은 하루 종일 힘든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임신 중에도 일을 멈출 순 없었습니다. 심지어 밭에서 일하다가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러한 실태를 알게 된 세종은 노비들에게 출산휴가를 대폭 확대하게 됩니다.
기존에는 여성 노비만 출산 후 7일간의 휴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산 직전 30일을 쉬게 하고 출산 후 100일 휴가를 부여합니다. 그리고 남자 노비에게도 30일간의 출산휴가를 주게 됩니다. 정말 멋집니다.
3) 한글 창제
세종은 백성들이 책을 읽고, 이치를 깨달아 올바르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행정적인 정보를 쉽게 얻도록 하기 위해 한글을 창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한글을 누가 만들었느냐? '훈민정음해례본'을 살펴보면 세종이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세종 단독 창제설이 유력해 보입니다. (다른 의견으로는 둘째 딸 정의공주가 도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4) 최초의 달력, 칠정산
당시 하늘에 올리는 의례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식과 월식이 정말 중요한데, 점차 오차가 생기게 됩니다. 그럼에 따라 백성들은 임금이 덕을 잃어서 그런 것이라며 쑥덕거리기 시작합니다. 세종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한양을 중심으로 '칠정산'이라는 달력을 만들 게 됩니다. '칠정산'이란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등 일곱 개의 별을 말합니다. 이 별들의 위치를 완벽하게 계산하여 달력으로 만든 것입니다.
5) 예의범절과 음악을 중시한 세종
세상을 타락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 세종입니다. 그래서 '삼강행실도'라는 책을 만들게 됩니다. 3강인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자식, 남편과 아내에게 귀감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의 이야기를 뽑아 그림과 함께 만든 책이 바로 '삼강행실도'입니다.
또한 음악을 통해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백성을 교화하고자 합니다.
2. 갑질 사장, 세종
당시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긴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며 나랏일을 집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집현전 학자들을 정말 아꼈죠.
'하루는 세종이 내관에게 숙직 중인 학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엿보고 오라고 합니다. 학사는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계속해서 엿보고 오라고 합니다. 첫닭이 울 때까지 엿보고 오니 그제야 촛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세종은 직접 집현전으로 나가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덮어주었다고 합니다.'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훈훈한 미담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야근하고 있는데 직장 상사가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섭기도 하네요. 이처럼 백성들에게는 성군이지만 신하의 입장에서는 피곤한 스타일의 왕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노쇠한 신하들의 사직서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이가 75세가 된 권진은 사직을 청하지만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우의정의 자리에 앉혀버립니다. 세종은 권진이 죽기 전까지 매번 그를 불러 정사를 논했다고 합니다. 또한, 부모 삼년상을 100일만 지내고 오라고 합니다. 이처럼 세종은 일에 죽고 못 사는 갑질 사장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3. 비운의 드라마 주인공, 세종
1) 장인의 죽음
오늘 날의 국방부 차관이었던 강상인이 상왕인 태종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일이 일어납니다. 강상인을 경계하던 병조좌랑 안헌오는 "이제 호령이 두 곳(태종과 세종)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한 곳(세종)에서 나오는 것만 못하다" 하였다는 보고를 하게 됩니다. 이에 연루된 신하들을 대대적으로 처벌하게 됩니다. 여기에 심정이 고문을 받다가 세종의 장인인 심온도 죄인이라는 허위 자백을 합니다. 당시 중국 사신길에 오른 심온(세종의 장인)을 배웅하는 사대부들이 장안성을 덮을 만큼 많았다는 소식에 외척의 세력을 경계하던 태종은 심온을 붙잡아 죽이게 됩니다. 당시 세종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2) 며느리의 동성애
세종의 세자 '문종'은 첫 째 부인과 사이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문종이 궁녀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질투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궁녀의 신발을 후며 불에 태워 그 재를 몰래 문종에게 먹이려고 합니다.(민간요법, 주술로 화를 누르는 일) 이런 엽기적인 행각으로 궁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그렇게 두 번째로 맞이한 세자빈 순빈 봉씨는 이보다 더한 엽기적인 행각을 벌입니다. 아이를 갖지 못해 사랑을 받지 못해 굶주린 마음을 궁녀들에게 표출하기에 이릅니다. 당시 궁녀들 사이의 동성애를 '대식'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대식'은 궁녀의 처소에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성애를 나타내는 은어로 통용되죠. 순빈 봉 씨는 소쌍이라는 궁녀와 '대식'을 하였고, 이를 들켜 궁궐이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지금까지 세종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세종은 백성의 편에 서서 조선을 빛낼 눈부신 업적들을 달성했습니다. 신하들에게는 악덕임금이었지만 백성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성왕으로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비운의 드라마 주인공처럼 장인의 죽음과 엽기적인 며느리들을 맞이했지만, '세종대왕' 그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우리 역사에 정말 위대한 왕 중의 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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