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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 과거 급제, 왕권 강화, 조사의의 난, 문제의 맏아들

by 작심인프피:) 2024. 2. 13.

안녕하세요. 작심인프피:)입니다. 저는 조선의 왕을 주제로 블로그를 작성 중입니다. 오늘은 조선의 3번째 왕인 태종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유일하게 과거 급제한 태종은 조사의의 난으로 마음을 다치지만 왕권 강화를 위해 힘씁니다. 하지만 골칫덩이인 맏아들로 고충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태종 이방원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종 이방원 상상 어진 (출처-나무위키)

태종

1. 생애: 1367년~1422년 (함경남도 함흥시 출생)

2. 재위기간: 1400~1418년 (18년)

3. 휘: 이방원

4. 배우자: 원경왕후, 후궁 19명

5. 자녀: 12남 17녀

 

 

1. 과거 급제 태종 이방원

 이방원은 조선 27명의 왕 중 유일하게 과거에 급제한 천재입니다. 1382년(우왕 9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다음 해 문과 병과 7등으로 급제하였습니다. 아버지 이성계는 이방원을 끌어안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행정고시에 합격한 셈입니다. 이성계에게 자랑스러운 아들 이방원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바로 왕자의 난 때문이죠. 자식이지만 아주 미웠을 겁니다. 그로 인해, 이성계는 아들을 응징하기 위한 난을 계획하게 됩니다.

2. 조사의의 난

 아들이 미워 함흥으로 돌아가 버린 이성계. 마침 이성계의 둘째 부인의 친척인 '조사의'는 "강 씨의 원수를 갚겠다!"며 난을 일으키는데, 이성계가 힘을 합치게 됩니다. 하지만, 요즘 학자들이 연구한 끝에 함흥에 연고가 없는 조사의가 난을 일으킨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합니다. 즉, 태조 이성계가 직접 주도했다고 보는 것이지요. 변란에 아버지가 가담한 것을 이방원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방원은 더욱 극진히 효도합니다. 여론을 되찾기 위한 방도 아니었을까요?

3. 왕권 강화

1) 6조 직계제: 왕-의정부-6조의 관계에서 의정부를 거치지 않고, 왕이 6조에 직접 명령하고 보고 받는 것
조선 초, 의정부는 오늘날의 국무총리, 즉 행정부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6조는 오늘날의 국방부, 교육부, 기획재정부 등에 해당합니다. 6조 직계제를 시행하게 되면 행정업무에 대한 왕의 권한이 강화되며 의정부의 역할이 축소됩니다. 

 2) 사병 혁파: 관리들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 병사들을 모두 없애버립니다.
태종이 1차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2차 왕자의 난을 제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사병'입니다. 사병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사병이 계속 존재하게 되면 반란이나 쿠테타가 일어날 수 있겠죠? 그래서 태종은 사병을 없애버리게 됩니다.
3) 외척 탄압: 태종의 아내 원경왕후 민 씨와 그 가문을 탄압합니다.

이방원을 왕으로 만들어 준 일등 공신은 바로 원경왕후 민 씨입니다. 미리 숨겨 놓은 무기를 제공하여 왕자의 난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게 해 준 최고의 조력자였죠. 하지만 왕위를 얻고 많은 후궁을 들이게 됩니다. 이에 민 씨는 시샘일 하늘을 찌르게 되지요. 그리고 민 씨의 남동생인 민무구, 민무질은 이방원이 왕이 되는 걸 도운 공신들입니다. 하지만 태종은 왕이 되고 나서 그들을 멀리합니다. 심지어 제주도로 유배를 보낸 뒤 사약을 내리지요. 사실 민 씨 형제가 세자 양녕대군을 엎고 권력을 장악하려는 낌새를 눈치채기도 했지만, 투기가 심한 민 씨에 대한 반발도 여기에 한몫한 것 같습니다.

4) 사간원의 독립: 사간원은 임금에게 직언(바른말로 고함)하는 기관입니다. 이 기관을 독립시켜 위에 왕만이 있게 합니다.
태종은 사간원이 직언하여 심기를 불편하게 해도 웬만하면 들어주거나 지나치면 유배를 보낸 후 다시 복직시켰다고 합니다. 상황이 이래지자, 당시 사간원 관원들은 직언한 후 감옥살이하다 풀려나거나 유배를 다녀오면 이를 영광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이처럼 리더의 주변에는 용기 있게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그 조직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것을 태종 이방원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5) 선위 파동: 선위란, 왕이 후계자에게 양위하는 것입니다.

정치 9단 태종은 종종 신하들에게 선위 파동이라는 폭탄선언을 합니다. 그럼, 신하들은 "아니 되옵니다. 아직 세자 전하는 전하를 따라가기에 멀었사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태종의 비위를 맞추게 됩니다. 이처럼 종종 신하들의 간을 보며 충성심을 시험하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태종은 진심으로 선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제4대 임금, 세종이 즉위하게 됩니다.

 

4. 문제의 맏아들

태종은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세종), 성녕대군 이렇게 4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태종은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기에, 후대에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따라서 적장자(첫 번째 부인의 맏아들)인 양녕대군을 1402년 세자로 책봉하였습니다. 하지만 세자 양녕대군은 점차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양녕대군은 어린 시절을 민 씨 형제인 외삼촌의 집에서 보냈습니다. 따라서 아버지가 외삼촌들에게 한 일들에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거기에 어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하며 비범함을 뽐내던 셋째 충녕대군(세종)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비범한 능력을 갖춘 동생이 있어 안심되었는지 비행을 일삼게 됩니다. 궐에 있는 개구멍을 통해 밤마다 나가 여자 문제를 일삼았다고 합니다.
 결국, 1418년 태종은 세자 양녕을 폐하고 셋째 아들인 충녕을 세자로 책봉하게 됩니다. (둘째는 불교에 빠져버렸다고 합니다.)

 

세종이 세자가 된 지 2개월 만에 태종은 왕위를 세종에게 물려주게 됩니다. 조선왕조 27명의 왕 중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양위한 왕이 바로 태종 이방원입니다. 물러나야 할 때를 알고 겸허히 물러난 사람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과거에 급제할 만큼 똑똑한 왕, 조사의의 난으로 상처받지만 효를 중시한 왕, 왕권 강화를 위해 힘쓰고 문제의 맏아들이 있었지만 역대 훌륭한 왕인 세종을 탄생시킨 태종 이방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그의 인생이 피로 만들어졌으나 훌륭한 카리스마와 결단력을 통해 조선을 바로 잡아 세종이 꽃피울 수 있는 텃밭을 만든 왕이었음을 칭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