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작심인프피:)입니다.
오늘부터 조선의 왕들에 대한 글을 포스팅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조선의 1대 왕 태조 이성계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성계의 조선 건국, 조선의 디자이너 정도전, 왕자(이방원)의 난을 소주제로 태조 이성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조 이성계
1. 생애 : 1335년 11월 4일(함경남도 금야군 출생) ~1408년 6월 27일 (74세)
2. 재위 : 1392년(56세) ~ 1398년
3. 본관 : 전주 이씨
4. 배우자 : 신의왕후(정비), 신덕왕후(계비), 6명의 후궁
5. 자녀 : 8남 5녀
6. 신장 : 180cm
1. 이성계의 조선 건국
이성계가 조선 태조로 즉위하면서 고려가 멸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세워졌습니다. 조선 건국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위화도 회군(1388년):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위해 출정했으나 군대를 돌려 고려 수도 개경을 점령하고 고려의 명나라에 대항했습니다. 이후 이성계는 고려의 말기 정국을 진압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는 데 필요한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 고려의 몰락(1392년): 이후 고려는 내부적인 불안과 명나라의 압박으로 몰려들었습니다. 1392년 고려의 제32대 군왕인 공양왕이 폐위하면서 이성계가 태조로 즉위하고, 조선이 세워졌습니다.
3. 왕위 정착과 정책 수립: 태조는 새로운 왕조를 정착시키기 위해 신분제를 개혁하고, 사신 정책을 펼쳤습니다. 또한, 개혁된 행정 체제를 도입하고 군사제도를 강화하여 조선의 안정을 증진했습니다.
4. 한양 천도 및 경복궁 건립: 태조는 경복궁을 건립하여 조선의 수도를 서경(개경)에서 한양(서울)으로 옮겼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가 새롭게 정립되었습니다.
+ 조선 건국 당시 이성계의 나이는 57세였습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령의 나이로 즉위한 임금입니다.
2. 조선의 디자이너 정도전
태조 이성계가 집권하던 시절, 정도전은 '조선을 디자인한 인물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었습니다.
1. 위화도 회군 격려 : 고려의 요동정벌 계획 중 정도전과 남은, 조인옥 등이 이성계에게 군사를 되돌리자는 의견을 올렸고 이에 '위화도 회군'이라는 역성혁명을 통해 조선을 건국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2. 경복궁 위치 선정 : 한양 천도 시, 정도전은 하륜과 궁궐을 놓는 위치에 대한 논의가 팽팽했습니다. 정도전은 전통 유교방식대로 북쪽의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고 관악산 쪽을 바라보며 오늘날 경복궁의 자리에 궁궐을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에 하륜은 현재 경복궁의 서쪽 지역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결과는 정도전의 의견이 채택되었습니다. 그리고 '경복궁'이라는 이름도 정도전이 짓게 됩니다. '경복'이란 '복을 누리소서'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때, 하륜은 도읍과 관악산이 마주 보게 되면 관악산의 강한 화기로 인해 국가에 큰 재앙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후 한양에서는 왕자의 난들과 200년 후에는 백성들에 의해 경복궁이 불타게 되죠... 하륜의 조언을 들어야 했을까요?
3. 왕의 교육제도: 정도전은 신권 중심의 세상을 외친 학자입니다. 아버지에서 아들로 대를 잇는 왕조 체제는 성군이 나올 수도 있지만, 폭군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자질을 가진 왕이 즉위하더라고 나라가 망하지 않는 시스템을 구축하길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경연제도와 윤대를 강화하게 되었습니다.
경연이란, 왕이 신하와 함께 학문을 토론하고 현실 정치를 의논하는 것입니다. 왕을 공부시키는 것이지요. 조강(아침) 2시간, 주강(점심) 2시간, 석강(저녁) 2시간 총 6시간을 신하들과 공부를 한 것입니다.
윤대란, 의무적으로 관청의 관리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매일 나라에 들어오는 상소문을 읽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담으로 상소문을 읽는 시간은 잠에 들기 전인데, 오늘날로 치면 왕에게 달리는 악플을 매일 밤 읽으며 잠에 들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조선의 왕들을 쥐 잡듯 잡아서 성군으로 만들겠다는 정도전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왕자의 난 (이방원)
왕자의 난 배경
1. 태조 이성계는 왕세자를 막내(이방석)로 정하게 됩니다. 이성계에게는 2명의 부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첫째 부인은 조선 건국 이전에 죽게 되고 둘째 부인을 많이 아끼게 됩니다. 그래서 둘째 부인의 2명의 자녀 중 막내를 왕세자로 책봉하게 되죠. 이에 따라 첫째 부인의 아들들의 시샘이 커지게 됐죠.
태조 | |||||||
신의왕후 한씨 | 신덕왕후 강씨 | ||||||
이방우 | 이방과 (제 2대 정종) |
이방의 | 이방간 | 이방원 (제 3대 태종) |
이방연 | 이방번 | 이방석 (세자) |
2. 외교 문제인 '표전 문제'가 일어납니다. 당시 원명 교체기였습니다. 명나라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이성계 세력을 견제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와중 명나라에 올린 글귀(표전)가 모욕적이다는 이유로 표전 작성자 '정도전'을 잡아 오라는 명까지 떨어지게 되었죠. 고개를 조아려 일은 잘 마무리되었지만, 조선의 심기는 날로 불편해졌습니다.
3. 정도전은 요동정벌을 추진하는 핑계로 이방원의 사병을 몰수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조선에 친화적인 여진족과 함께 명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요동정벌을 계획하며 눈엣가시였던 이방원도 견제하는 일거양득을 꾀하기 위해서입니다.
왕자의 난 경과
왕자의 난은 이방원 아내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평상시 남편 방원에게 몸을 최대한 낮출 것을 요구하였으며, 미리 정변에 필요한 무기를, 친정을 통해 구해 땅속에 숨겨둡니다. 그 후, 왕자의 난은 정도전이 신의왕후 한 씨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 소생의 왕자들을 죽이려 했다는 명분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이방원은 결국 정도전을 죽이고 이복형제인 방번과 세자 방석을 죽이게 됩니다.
왕자의 난 결과
태조 이성계는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이방원은 왕위에 오를 수 있었지만 둘째 형인 방과에게 양보하게 됩니다. 이유는 민심이 크게 동요될 걸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조선의 두 번째 임금, 정종이 즉위하게 된 것입니다.
+상왕 : 임금이 생존하여 있으면서 왕위를 다음 임금에게 물려주었을 때 물러난 임금을 가리키는 말
조선의 건국, 정도전, 왕자의 난을 통해 태조 이성계의 삶을 엿보았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새 왕조를 연 창업군주였으나 말년에는 쉬이 죽지 못한 것에 대해 한탄했습니다. 그의 나이 74세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당시 왕들의 평균 수명은 40 전후인 것에 비해 장수한 임금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들은 쉽게 할 수 없는 새로운 왕조를 만든 대단한 왕입니다. 하지만 아들에 의해 사랑하는 두 아들과 충신이자 친구 또한 잃었으니, 그의 인생이 정말 안쓰러워 보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2년간의 짧은 집권 기간을 가지고 있는 '정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의 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6대 왕] 단종 12세 왕 즉위, 황표정사, 계유정난, 어린 상왕 (0) | 2024.04.15 |
---|---|
[조선 5대 왕] 문종의 길었던 세자 기간, 조선의 미남, 측우기 발명 (0) | 2024.02.15 |
[조선 4대 왕] 세종대왕은 갑질사장, 백성의 편, 비운의 드라마 주인공 (1) | 2024.02.14 |
[조선 3대 왕] 태종 이방원 과거 급제, 왕권 강화, 조사의의 난, 문제의 맏아들 (0) | 2024.02.13 |
[조선 제2대 왕] 정종 왕자의 난, 격구 왕, 개경 환도 (0) | 2024.02.12 |